"야구 인생에 결코 후회는 없다"

1980년 5월 28일 롯데의 홈구장 가와사키 구장에서 벌어진 한큐와의 경기 6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투수 야마구치의 빠른 볼에 장훈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았다.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2점 홈런, 장훈의 3000번째 안타였다.

장훈은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감히 넘어서지 못했던 대기록을 달성하고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히로시마에서 보낸 어린시절과 나니와 상고에서 겪은 좌절 그리고 지난 22년간의 프로 생활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장훈을 스쳐지나갔다.

자기가 할 일이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을 하자 순간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술을 좋아했지만 프로 생활 내내 술을 멀리했던 장훈은 3000안타를 때린 날 엉망으로 취했다고 한다. 22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대장정의 종착역. 장훈은 3000안타를 기록한 이후에도 구단주의 간곡한 만류로 결국 1년을 더 현역에서 뛰었다. 3000안타에서 85개의 안타를 다시 추가한 장훈은 1981년 23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쟁같이 치열했던 그라운드에서 내려왔다. 통산 타율은 .319

대부분의 선수들은 은퇴를 하면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었던 그라운드에서 떠난다는 사실에 많은 회한과 아쉬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리라. 때로는 은퇴후에도 그라운드를 못잊고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그것을 야구를 향한 아름다운 열정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러나 장훈은 전혀 달랐다.

▲ 장훈이 3000안타를 기록했던 가와사키 구장
ⓒ 박성호
'이제 다시는 타석에 들어서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제 다시는 배트를 들고 싶지 않다.'

장훈은 야구에 어떤 미련도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장훈에게 야구는 전쟁이었다. 장훈에게 그라운드는 총알이 빗발치는 치열한 전장터였다. 장훈은 그 전쟁에서 자신이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어느 누가 그 전장으로 다시 나가기를 원하겠는가.

"23년간의 야구 인생에 결코 후회는 없다."

장훈은 단호하게 말한다. 결코 후회는 없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귀화라는 좀더 쉬운 길, 좀더 안락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거칠고 험한 길을 선택한 장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죽을만큼 힘든 고통과 싸워온 세월이었다.

야구는 장훈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었지만 장훈에게 야구는 조국을 선택한 자신의 고집을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전쟁과도 같았다. 그래서 장훈의 야구가 눈물겹도록 고맙고 미안한 것이고 그래서 이 남자의 삶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대와의 화해 그러나...

1990년 7월 24일 요코하마 야구장. 올스타전 경기에 앞서 장훈이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왕정치보다도 이른 헌액이었다.

그런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면서 이상하게도 쌓였던 응어리가 한순간에 녹았다. 마치 기독교의 세례의식처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그동안 한국인으로서 당해야 했던 갖가지 억울함이 어느 새 잊혀졌다. -<일본을 이긴 한국인> 중에서-

평생 화해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일본 야구와 장훈,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일본 프로야구였고 장훈은 그들이 내민 손을 힘껏 잡았다. 장훈은 자신의 국적이 아닌 실력으로 모든 걸 평가받기를 원했고 자신이 이방인이 아닌 한 야구선수로 보이길 원했다. 그 소박하기만 한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장훈은 이후 나가시마 시게오나 왕정치 같은 대스타들과는 다르게 일본 프로야구 감독직을 맡지 않고 있다. 감독 제의는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훈이 감독을 맡지 않는 이유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앙금을 느낄 수가 있다.

"전 앞으로도 감독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선수일 때도 스포츠 신문에서 공격당하고 차별당했습니다. 감독이 돼 보세요. 사실 저는 문제없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당하고, 친구가 당합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그런 일 당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기자)도 매스컴 사람이지만, 매스컴은 가족까지 공격하니까요. 사실 야구라는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다른 문제로 공격당하면 가족이 엉망이 됩니다." -2000년 12월호 <월간 조선> 장훈 인터뷰-

아이들에게 장훈 유니폼을 사다 입힐 수 있다면...

얼마 전 양준혁(삼성)이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2000안타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정작 필자에게 양준혁의 2000안타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양준혁의 2000안타 기사에서 장훈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라도 언론을 통해 한국에서 장훈 선생이 조명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승엽의 기사에서 가끔 장훈 선생을 만날 수 있고 프로야구단 전지훈련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같은 국제 야구대회에서 선수들에게 조언을 하는 장훈 선생의 기사를 가끔 만날 수 있다. 그나마 그것도 감지덕지겠지만….

그러나 이래서는 안된다. 적어도 장훈이 왜 일본땅에서 그렇게 힘든 길을 선택하고 걸어왔는지 이유를 안다면, 장훈에게 조국이 얼마나 큰 자부심을 주는 삶의 자랑이었는지를 안다면, 이땅에서 장훈을 이렇게 기억해서는 안된다. 시대와 화해하지 못하고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면서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만큼 숨막히는 업적을 일궈낸 장훈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세계에 내세울수 있는 위대한 영웅이다.

아이들에게 장훈의 유니폼을 사다 입힐 수 있는 곳이 한국에 있다면, 장훈이 이룬 업적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이 단 한 곳이라도 있다면, 프로야구에서 장훈을 만날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라도 있다면 감히 한국 야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장훈에 대해 한국인이 쓴 절판되지 않은 책 세 권 이상을 찾을 수 있다면 한국 야구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귀화하는 사람을 뭐라고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개인의 생각 나름이라고 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부모는 모두 한국인인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한 끝에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도 있는데, 이건 아무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돼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이 성공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닙니까. 저는 그런 데 대해서는 저항이 없습니다. 제가 막을 권리도 없죠. 결국 귀화 여부는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처음에는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죠. '이런 좋은 나라가 세계에 없으니 하지 말라'고 합니다." -2000년 12월호 <월간조선> 장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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